방명록
- 실의 일생2024년 10월 04일 23시 14분 28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.작성자: RACENI
단단한 두 실이 만나 한없이 엉키고 설켜 하나가 됩니다. 하지만 엉킨 줄의 행복은 오래가지 못합니다. 다행히 실이 굵어 한 가닥 한 가닥 풀어나가기 시작했고, 다 풀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. 그들은 마주 보며 평행선을 이뤄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고, 꽤 오랜 기간 아니 영원히 평행이 유지될 줄 알았습니다. 여러 군데 부딪히며 가늘어진 실은 서로에게 기대고 싶어하는 마음이 점점 커졌습니다. 마침내, 아니 결국 그들은 다시 엉키게 되었습니다. 이번 엉킴이 잘못된 엉킴임을 아는 데 불과 1초도 안 걸렸고, 어째서인지 서로 바라만 보기 시작했습니다. 한 실은 철사같이 단단해졌고, 나머지 한 실은 점점 가늘기 시작했습니다. 철사를 뒤로하고, 가늘어진 실이 손쉽게 엉킨 곳을 빠져나왔습니다. 함께 풀지 않았기에 철사는 여전히 엉켜있지만, 둘은 다시 부드러운 실이 되어 평행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. 시간이 야속한 건지. 상황이 야속한 건지. 그 둘은 절대 알지 못합니다. 이렇게 둘은 엉키고 풀기를 반복하며, 베일만큼 가늘어졌습니다. 다시는 누구를 기댈 수도, 엉킬 수도 없는 상황에 직면했습니다. 그래도 어찌저찌 상황은 악화하지 않고 흘러가는 듯했습니다.
끊어지기 싫어 단단해지기로 한 둘은 서로의 단단함을 못 이겨 절단으로 서로의 상처를 남기고 사멸합니다.'WRITING > 그냥 이런저런' 카테고리의 다른 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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